[특별기고] 선거에 밀린 의병의 날 (경기일보, 2026.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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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일 26-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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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갑 무명의병포럼 대표·역사문화콘텐츠연구원장

6월1일은 국가가 법정기념일로 정한 의병의 날이다. 그러나 정작 오늘, 국가 차원의 의병의 날 기념행사는 열리지 않는다. 6월3일 지방선거 일정을 이유로 기념행사가 7월27일로 연기됐기 때문이다.
의병의 날 기념행사는 행정안전부가 주최하고 의병과 관련된 지방자치단체가 주관하는 국가기념행사다. 2011년 경남 의령에서 첫 행사가 열린 이후 매년 6월1일 개최됐다.
의병의 날은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자신의 생명과 안위를 돌보지 않고 일어섰던 의병들의 희생과 헌신을 기억하기 위해 국가가 정한 날이다. 그렇다면 한번 생각해 보자. 지방선거가 3월 초에 있다면 3·1절 기념행사를 연기할 수 있을까. 선거 일정이 겹친다고 현충일 추념식을 다른 달에 개최할 수 있을까. 아마 대부분의 국민은 그런 발상 자체를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의병의 날만은 예외가 됐다. 이는 행정 편의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사회가 의병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다.
국사편찬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3·1운동 과정에서 순국한 독립운동가는 800~1천100명으로 추정된다. 반면 한말 의병전쟁 과정에서 전사하거나 순국한 의병은 1만8천명이 넘는다. 그러나 우리는 이 사실을 잘 알지 못한다. 의병의 희생은 우리 사회의 기억 속에 충분히 자리 잡지 못했고 역사 서술에서도 상대적으로 소외돼 왔다.
특히 전사하거나 순국한 의병 대부분은 이름조차 남기지 못했다. 그들은 이름도, 얼굴도, 묘비도 없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쳤지만 기억되지 못한 사람들, 바로 무명의병들이다.
최근 들어 무명의병을 기억하고 기념하려는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는 것은 매우 반가운 변화다. 그러나 이번 의병의 날 기념행사 연기는 그러한 사회적 흐름과 기대에 다소 미치지 못한 결정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런 점에서 의병의 날 국가기념행사가 정치 일정 때문에 연기된 현실은 더욱 안타깝다. 의병을 기억하는 일이 여전히 국가적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려 있는 것은 아닌지 묻게 된다.
물론 지방선거는 중요하다. 그러나 국가가 스스로 정한 기념일조차 정치 일정에 따라 변경된다면 국민들은 그 기념일을 소중하게 받아들이겠는가.
그나마 다행인 것은 국가기념행사와 별개로 6월1일 지방자치단체 몇 곳에서 의병을 기억하는 행사가 열리는 점이다. 특히 춘천에서는 의병항쟁 130주년을 맞아 ‘무명의병, 우리가 당신을 기억합니다’를 주제로 기념행사가 열린다. 이름조차 남기지 못한 의병들을 기억하려는 시민의 노력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의병의 날은 달력에 적힌 하나의 기념일이 아니다. 그것은 국가가 의병들의 희생을 잊지 않겠다고, 후손들이 그 정신을 이어가겠다고 역사 앞에 한 약속이다. 그 약속이 흔들릴 때 잊히는 것은 하루의 행사가 아니라 한 나라의 기억이다.
오늘 의병의 날, 국가 차원의 기념행사는 없지만 기억은 멈춰서는 안 된다. 이름도 남기지 못한 1만8천여 의병의 희생을 떠올리며 우리 모두가 마음속으로 그들의 이름을 다시 불러보는 하루가 되기 바란다. 그것이야말로 의병의 날을 지키는 가장 진정한 방법일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이번 연기를 단순한 일정 조정 정도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결코 가볍게 넘길 문제가 아니다. 국가기념일은 평범한 행사가 아니라 국가가 반드시 기억하고 계승하겠다고 약속한 역사와 정신, 그리고 국가 정체성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