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진갑 역사문화콘텐츠연구원장·무명의병포럼 대표
▲ 강진갑 역사문화콘텐츠연구원장·무명의병포럼 대표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국민은 누구를 믿을까. 대부분은 군대를 떠올릴 것이다. 군대는 외적의 침략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고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한다.

그렇다면 나라의 운명이 흔들렸던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제국주의의 거센 침략 앞에서 조선과 대한제국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총을 들고 싸운 군대는 누구였을까. 이 질문 앞에서 우리는 익숙하지만 불편한 역사와 마주한다. 답은 정부의 군대인 관군이 아니다. 침략자와 맞서 싸운 것은 의병이었고, 그 중심에는 이름조차 남기지 못한 수많은 무명의병이 있었다.

1876년 개항 이후 조선은 근대 국가 건설을 목표로 군제 개혁을 추진했다. 대한제국은 신식 총기와 대포를 들여오고 군함 확보를 추진했으며, 무기를 자체 생산하기까지 했다. 1901년에는 시위대·친위대·진위대로 구성된 18개 대대의 근대식 군대를 갖추었다. 겉으로만 보면 대한제국은 근대 국가에 걸맞은 군사력을 갖춘 듯 보였다. 그러나 화려한 제복과 신식 무기가 곧 나라를 지키는 것은 아니었다.

◆ 관군은 제국주의 침략자와 한 번도 싸우지 않았다.

조선과 대한제국의 관군은 개항 이후 한반도를 침략한 외세와 단 한 차례도 정면으로 맞서 싸우지 못했다. 1885년 영국이 거문도를 점령했을 때도, 1894년 청일전쟁과 1904년 러일전쟁으로 한반도가 전쟁터가 되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서는 외세의 군사 활동을 지원하기까지 했다. 당시 관군의 주된 임무는 침략군에 맞선 동학농민군과 의병을 진압하는 일이었다. 국방을 위해 존재해야 할 군대가 국민을 향해 총을 겨누는 역설적인 현실이 펼쳐진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책임을 군인 개인에게 돌릴 수는 없다. 개항 이전인 1866년 병인양요와 1871년 신미양요에서 관군은 프랑스군과 미군에 맞서 끝까지 싸웠다. 개항 이후 군대의 성격이 달라진 것은 군인들의 문제가 아니라 고종과 왕실, 그리고 지배층의 잘못된 국가 운영이 빚어낸 비극이었다.

1907년 대한제국 군대가 강제로 해산되면서 역사는 새로운 전환점을 맞는다. 군복을 벗은 장병들은 의병이 되어 산과 들로 향했다. 국가의 군대는 사라졌지만 나라를 지키려는 군인의 사명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들은 국민의 군대로 되돌아간 것이다. 의병의 대부분은 이름을 남기지 못했다. 전투에서 쓰러진 뒤 가족에게조차 잊힌 이들이 있었고, 기록 한 줄 남기지 못한 채 산야에 묻힌 사람들도 있었다. 오늘 우리가 기억하는 의병장이 숲을 우뚝 지키는 거목이라면, 무명의병은 그 숲을 이루고 생명을 불어넣은 수많은 나무였다. 의병은 대한제국의 멸망을 막지 못했다. 그러나 그들의 총성은 만주와 연해주의 독립군으로 이어졌고, 마침내 광복군으로 계승되었다. 오늘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독립은 이름 없는 그들의 희생 위에 세워져 있다.

역사는 이름을 남긴 영웅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시대를 떠받치는 힘은 이름 없이 자신의 자리에서 공동체를 지켜낸 평범한 사람들에게서 나온다. 나라가 가장 위태로웠던 순간 끝까지 침략자와 맞서 싸운 군인은 화려한 제복을 입은 관군이 아니라 무명의병이었다.

무명의병을 기억하는 일은 과거를 추모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나라가 가장 어려웠던 순간 끝내 공동체를 지켜낸 사람들이 누구였는지를 후세에 전하는 일이며, 대한민국이 어떤 희생 위에 세워졌는지를 되새기는 일이다. 이름은 남지 않았지만, 그들이 지켜낸 나라는 오늘도 우리 곁에 살아 있다. 대한민국 최초 국민의 군대는 한말 의병이었고, 그 중심에는 이름 없는 무명의병이 있었다. 이제 역사는 그들에게 빼앗긴 이름을 돌려주어야 한다.

/강진갑 역사문화콘텐츠연구원장·무명의병포럼 대표